
저자: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 Aberdeen City Council (Archives, Gallery and Museums Collection), 퍼블릭 도메인, 링크
맑스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의 지위는 여자들이 아직 보다 자유로왔고 존경받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지만, 영웅시대에 들어와 그들은 이미 남성의 지배와 여자 노예의 경쟁으로 굴욕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오딧세이에서 텔레마코스(Telemachos)가 자기 어머니를 격리시켜 놓고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는 장면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포로가 된 젊은 여자들이 승리자의 정욕의 희생물로 되고 있다. 즉 상관들은 자기들의 위계 서열에 따라 그 여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자를 선택한다. 일리아드는 그 전체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러한 여자 노예들 때문에 생긴 아킬레스와 아가멤논 사이의 싸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대웅 옮김, 도서출판아침, 1989년, 69쪽]
역시 역사덕들은 이야기책을 읽어도 그 안에서 역사적 함의를 찾아내는 재주가 있다. 얼마 전에 본 크리스토 놀란의 오디세이에서는 텔레마코스와 그의 어머니, 즉 오뒷세우스의 아내 사이의 관계는 텔레마코스가 상대적으로 더 훈계받는 처지로 그려졌는데, 원작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원작을 읽고 싶던 마음도 생겨 얼마 전에 오뒷세이아를 당근에서 구매해서 읽던 차에 아래 구절을 발견했다.
“오뒷세우스만이 트로이아에서 귀향의 날을 잃으신 것이 아니라 술한 사람이 파멸했으니까요. 어머니께서는 집안으로 드시고 베틀이든 물레든 어머니 자신의 일을 돌보시고 하녀들에게도 가서 일하라고 하세요. 연설은 남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제 소관이에요. 이 집에서는 제가 주인이니까요.” 그러자 페넬로페는 놀라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아들의 슬기로운 말을 마음속 깊이 간직했다.[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코퍼레이션, 2026년, 41쪽]
이 부분이 바로 엥겔스가 지적했던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번 영화에서 헬레나 역을 맡았던 루피타 뇽오가 “호메로스, 당신은 여성 인물들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데 우리 영화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진 비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가 뭘 모르는 배우라고 비판받았다고 한다. 뇽오의 정확한 발언 의도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위 구절을 보면 영화와 다른 여성의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즉, 영화에서는 페넬로페가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다소 위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들에게 본인의 주장을 피력하는 반면(물론 그 와중에도 여성은 온전히 왕의 권력을 누릴 수 없다는 현실을 개탄한다), 원전에서는 오히려 텔레마코스가 어머니인 페넬로페에게 여성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라고 강압적으로 말하고 페넬로페는 이 말에 순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설은 남성의 몫, 여성이 있어야 할 자리는 베틀 앞.
